[단독] 은행 청년인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복현명 기자l승인2016.04.07l수정2017.06.1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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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넷타임스=복현명 기자] 이명박 정부 당시 주요 은행이 청년실업 해소라는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도입했던 청년 인턴제도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 인턴으로 선발된 인원의 경우, 1차 서류전형 면제 등의 혜택이 주어졌지만 정작 각 은행은 임원 면접 등에서 회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등 적극적인 채용 의지가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수 많은 청년들이 신입 행원으로 선발되기 위해 청년 인턴에 도전했지만 채용의 꿈을 이룬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비즈넷타임스

더욱이 청년 인턴으로 근무하며 예비 은행 직원의 꿈을 키웠던 청년들이 복사와 전단지 배포, 고객응대 등 허드렛일만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지주와 시중‧지방‧국책은행 등은 이명박 정부가 2009년 당시 청년실업 해소를 주요 정부시책 중 하나로 공표하자 ‘청년 인턴제도’를 도입해 청년 실업 해소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각 은행은 매년 청년 인턴을 선발해 일정기간 근무 경험을 쌓게 한 후 1차 서류전형 면제 등의 해택 등 가산점을 부여해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청년 인턴으로 채용된 후 신입 행원으로 선발된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은행을 제외하고는 청년 인턴제도를 사실상 폐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7일 본지가 각 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청년 인턴 채용 인원은 1만5500명이다. 이 중 신입 행원으로 선발된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 인턴의 신입 행원 채용 현황을 공개한 한국수출입은행의 경우 ▲2010년 1명 ▲2011년 7명 ▲2012년 17명 ▲2013년 14명 ▲2014년 4명 ▲2015년 18명 등 총 61명을 신입 행원으로 선발했다. 수출입은행이 같은 기간 청년 인턴으로 선발한 인원은 총 728명. 10명 중 1명 미만이 선발된 셈이다.

여타 은행의 경우, 관련 제도를 폐지했거나 폐지 수순을 밟고 있어 채용 현황을 밝히기를 극도로 꺼려했다. 금융권에서는 수출입은행과 비슷한 수준에서 채용이 이뤄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폐지수순을 밟고 있는 은행은 우리와 기업, 경남, KEB하나 등이다. 이들 은행은 각각 2013년(우리)과 2014년부터 청년 인턴을 선발하지 않고 있다. 신한은행은 2009년 1차례 청년 인턴을 모집한 후 다음 회계연도에 이 제도를 폐지했다.

현재 은행권에서 관련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곳은 수출입은행, KDB산업은행, 한국씨티은행(대학과 연계한 NGO인턴 채용), 새마을금고(점포별 채용)뿐이다.

◇ 은행 청년 인턴, “우리는 청경으로 불렸다”

미래 은행 직원을 꿈꾸며 청년 인턴에 지원했던 수많은 청년들은 은행 업무와는 거리가 먼 각종 허드렛일에 시달리다 꿈을 접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소재 명문대를 졸업한 A(남/32세)씨는 2012년~2014년까지 총 3곳(시중 및 국책)의 은행에서 청년 인턴으로 근무했다. 그는 재무설계사(AFPK)와 펀드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등 금융 관련 자격증만 5개를 보유한 ‘미래 은행 꿈나무’였다.

A씨는 청년 인턴으로서 은행 실무만 잘 익힌다면 자신이 꿈꿔왔던 금융 종사자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격증도 소용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단순 문서작성과 전표 정리 등 간단한 창구업무가 고작이었다.

▲ 시중은행에 청년 인턴으로 채용돼 현장 업무에 나섰던 A씨는 자료 정리 등 허드렛일만 했다. 사진=A씨 제공.

월 평균 125만원의 보수를 받았던 그는 문서작성 등 단순 업무뿐만 아니라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전세자금대출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다.

A씨는 현장에서 심각한 괴리감을 느꼈지만 인턴 경험을 바탕으로 정규직에 도전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2차 임원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만 5번. 이후 금융종사자의 꿈을 접고 일반 기업에 취업했다.

A씨는 “임원 면접에서 ‘청년 인턴으로서 한 일도 없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들이 청년 인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깨닫게 됐다”면서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은행 문턱을 밟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인턴 경험자 B(여/27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시중 은행에서 8주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B씨는 인턴 기간 동안 지점을 방문한 고객에게 번호표를 전달하고, 자동화기기 사용법을 안내하는 업무를 맡았다. 영업 후에는 서류 정리와 문서 대조 등 허드렛일을 했다. 심지어 직원들과 함께 먹는 과일 깎기를 전담했다고.

B씨는 “은행 내부에서 청년 인턴을 청원경찰이라고 불렀다. 하는 일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라며 “은행 입사 꿈은 접었다. 그저 은행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허탈해했다.

◇ 은행의 고백, “일자리 나눔 효과 없었다”

주요 은행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청년 인턴제도를 앞 다퉈 도입했지만 청년 실업 해소에는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게 금융계 안팎의 지적이다.

은행 역시 “일자리 나눔 효과가 없었다”고 고백하는 등 당시 발표했던 채용 인원 선발 자체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각 은행이 청년 인턴의 정규직 채용을 확대할 수 없었던 것은 지점 축소와 비대면 거래 강화, 수익성 악화 등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고동완 신한은행 홍보부 과장은 “청년 인턴제는 정부의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추진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채용을 전제로 한 고용형 인턴이 아니어서 은행 경험을 쌓아 업무 역량을 키워주는 부분이 컸다”며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인턴을 채용해도 영업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전혀 없어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게 은행의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규직 채용이 늘어나 청년인턴제가 소용이 없어졌고 경력단절여성의 채용과 임금피크제 등으로 인해 인턴 인원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청년 인턴이 일자리 나누기에 효과가 전혀 없다. 향후 인턴 보다는 신규 채용을 늘리자는 게 은행의 목표”라고 전했다.

반면 청년 인턴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수출입은행은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준영 수출입은행 홍보실 차장은 “5개월간 진행되는 청년인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재를 검증하고 우수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매년 유지하고 있다”며 “인턴 기간이 종료되더라도 개인의 의사와 직원의 평가를 거쳐 2개월~3개월 연장할 수 있어 청년 인턴들의 만족도가 높고 이를 통해 정규직 행원으로 입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사회단체와 학계는 은행의 청년 인턴 제도가 괜찮은 ‘알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은행의 청년인턴제가 업무의 질 보다는 단순 노무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의문”이라며 “입사 지원시 서류전형 면제 등의 조건을 내걸어 은행 입사를 희망하는 청년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다양한 교육 커리큘럼과 업무를 배당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수영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 직원들이 청년 인턴에게 업무를 가르쳐줄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다”며 “은행 입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기대감이 컸을지는 몰라도 은행이 서류 전형 면제와 채용시 우대를 조건으로 내세워 과대광고 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원 입장에서는 기존에 항상 해오던 업무가 있는데 인턴에게 그 일을 알려주기엔 업무적 효율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 간단한 서류 정리 업무만 하게 되는 구조”라며 “일종의 시간제 일자리 효과 밖에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복현명 기자  hmbok@biznet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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