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종란 노무사 “삼성 직업병 문제, 올해는 해결되길”

조나리 기자l승인2017.05.15l수정2017.05.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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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넷타임스=조나리 기자]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직후 삼성 측은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에 대해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아울러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이후 피해자 측과 삼성 측의 대화가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지금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하 반올림)는 600일 가까이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직업병 피해자 문제는 잊혀져갔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반올림에 따르면 2014년 당시 삼성과 직업병 피해가족대책위, 반올림 등 3주체는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차례 논의를 거쳤다. 2014년 12월부터 시작한 논의 끝에 가족대책위와 반올림 측은 2015년 7월 조정권고안을 내놨다. 내용은 삼성 측의 사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재발방지대책으로 이뤄졌다. 재발방지대책의 일환으로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그에 필요한 재원으로 삼성 측에 1천억원 출연을 요청했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삼성은 권고안을 거부했다. 다만 자체적인 ‘보상위원회’ 만들어 개별 피해자들을 상대로 2015년 12월까지 신청을 하는 자에 한에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삼성은 이에 대해 가족대책위와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보상 신청은 삼성 직업병 피해자 모두에게 열려있지 않았다.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는 신청 대상에 포함됐으나 삼성 측에 항의의 표시로 보상 신청을 하지 않았다.

삼성은 또 조정위원회와의 합의를 통해 재발방지대책 일환으로 지난해 1월 옴브즈만 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예방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조정위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 중 재발방지대책에 한해 합의를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음날 삼성 측은 이로써 모든 문제가 마무리됐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날부로 삼성은 반올림은 물론 피해자 측과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가 지난 11일 삼성 사옥 앞 농성장 인근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비즈넷타임스

반올림은 2015년 10월 농성장을 차린 후 지금까지도 삼성의 철저한 무대응과 싸우고 있다. 그러던 지금 반올림은 새로운 전환점에 접어들었다. 지난 7일 반올림은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와 삼성을 비롯한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협약을 맺었다. 지난 11일 농성장에서 만난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는 새 정부 출범을 맞아 “올해 안에,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10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삼성 직업병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인터뷰 중 한달 치 약값 70만원을 후원해 달라는 김미선씨 가족의 호소를 전하던 중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 대선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어떻게 결과를 보셨나.

농성장에서 반올림 활동가들과 같이 봤다. 출구조사 결과가 여론조사와 비슷하게 나와서 예상했던 대로 나왔구나 싶었다. 온 국민이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까지 촛불을 들어서 만든 대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태의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과 정당이 여전히 적지 않은 표를 얻은 것을 보고 답답하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보다는 ‘누굴 밀어주자’던지 지역감정으로 투표를 하는 등 청산해야할 과거에 머물러 있구나 싶었다. 그래도 촛불 후 치러진 대선이니 만큼 희망을 볼 수 있어서 안심하는 마음이 컸다.

- 이번에 대선 토론이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직업병 문제 등은 다뤄지지 않았다.

토론회뿐만 아니라 지난 4월 13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3주기 추모 ‘안전사회를 위한 대국민 약속식’에서도 참여했던 대선 후보(당시 문재인·안철수·심상정 후보)들이 직업병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아 아쉬웠다. 결국 보고 있던 직업병 피해자 가족분이 대선 후보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요청해서 겨우 약속을 받아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직업병 문제는 안전문제와는 다르다고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너무나 뼈아팠던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공감을 하는 반면 국민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별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치인들 역시 정책 논의에 소홀한 편이다. 물론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에 대한 ‘눈치보기’도 여전한 문제다.

- ‘대선 후보에게 묻는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연대 단체들과 함께 논의를 거쳐 두 가지 측면을 의제에 올렸다. 하나는 노동자의 안전 혹은 건강 측면에서, 또 하나는 삼성의 적폐 청산이라는 측면에서다. 삼성 백혈병 및 직업병 문제는 2007년 3월 고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그나마 2008년부터는 매번 국회에서 국정감사 등에서 문제가 거론됐지만 당시의 한나라당, 최근까지의 새누리당의 반대로 늘 무산됐었다. 고작 부사장급 몇 명만 나와서 살짝 야단맞고 가는 수준이 전부였다. 그 사이 사망자들은 계속 늘어갔고 제도는 개선된 게 없었다.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이 입법 발의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새 정부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와 모든 피해자들을 배제하지 않는 보상, 진실 된 사과 등의 실현을 위해 대선 후보별로 각자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 올해 초에도 한 분이 돌아가셨다.

유족만큼은 아니겠지만 완전한 타인의 죽음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인간으로서 부당한 죽음이나 억울함이 재발되지 않도록 연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황유미씨와 같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고, 산재가 인정되지 않아 싸우고 있는 분들, 병이 다시 재발한 분들, 시력을 잃은 분들, 약값조차 버거운 분들 등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가족들도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직업병 피해자들은 병마와도 싸우고 있지만 어려운 경제 형편에 더해 기업과 정부와도 싸우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역시 노동자들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LCD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을 얻은 김미선씨는 거듭된 재발로 시력을 잃었다. 최근에는 증상 악화를 막기 위해 신약을 처방받았지만 수급자 신분이 된 김씨에게 매월 수십만원씩 들어가는 병원비와 약값은 큰 부담이다. 이에 이번 달 약값 등으로 70만원 후원을 받고 있다. 삼성 임원들의 하루 회식비도 안 되는 70만원을 후원 받기 위해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 직업병 피해자들의 현실이다.

▲ 한달 치 약값인 70만원 후원을 요청하고 있는 김미선씨의 사정을 전하다 눈물을 보인 이종란 노무사. 사진=비즈넷타임스

-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발언이 논란이 됐었다. 더욱이 그날이 황유미씨 10주기라서 더욱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었다.

하필이면 10주기 행사 때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우리를 귀족노조나 전문 시위꾼 취급을 하는 것도 모자라, 특히 “용서할 수 없다”는 표현이 정말 이해가 안됐다. 본인이 용서를 하고 말고 할 입장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그것은 삼성의 임원 마인드로서의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관련기사: [현장] ‘삼성백혈병’ 황유미 10주기 “바보들이 세상 바꿀 것”) 그러나 이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서 우원식 의원 등이 직접 찾아와 사과를 했다. 강병원, 유은혜 의원님들도 계속 우리의 뜻에 동참하고 도움을 주고 있다. 비록 양향자 최고위원의 발언은 문제지만, 같은 당 내 소신파 의원들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문재인 당시 후보와의 정책 협약식도 이뤄질 수 있었다.

- 양향자 최고위원은 논란 직후 “그런 시각도 있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올림이나 피해자들 역시 ‘그런 시각’과도 오래 동안 싸워왔을 것 같다.

물론이다. 그런데 누가 그런 시각을 갖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결과 그런 시각은 일반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삼성 또는 삼성의 편을 드는 언론 등이 그런 시각을 만들고 조장해왔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는 강남 한복판, 그것도 삼성 앞에서 이렇게 농성을 하는데 대부분 시민들은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물론 ‘엄마부대’가 와서 난동을 부리고 간 적은 있지만  ‘슬쩍’ 음료수를 주고 가는 분들도 있다. 많은 시민들이 삼성이 노동자들,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 이곳에 농성장을 차린 지도 오래됐다.

600일 가까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초 삼성 측이 직업병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일방적인 보도자료를 뿌린 뒤 반올림 활동은 더욱 어려워졌다. 아직도 김미선씨 같은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분들도 많은데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10년 전과 다르지 않다. 진실 된 사과와 모든 피해자들에 대한 배제 없는 보상, 그리고 재발방지 대책이다. 또한 이는 정부에서도 나서서 해결할 일이다. 더욱이 삼성과 최순실이 교류가 있던 시기가 2015년 7월부터 10월경이다. 이 당시 삼성 백혈병 문제는 최대 이슈였고, 경영권 승계 문제와 더불어 이 문제가 논의됐으리라고 생각한다. 국회차원에서의 진실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 그럼에도 10년 전 처음 이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와 지금은 어떤 변화가 있나.

10년 전에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당연히 백혈병, 뇌종양 등의 심각한 직업병이 공장에서 비롯됐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때다. 그런데 이제는 황유미씨 아버지인 황상기님 등의 노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직업병에 대한 관심과 인식도 많이 높아졌다. 물론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것은 있다. 아직도 회사는 많은 정보들은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고,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반올림 농성장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비즈넷타임스

- 마지막으로 반올림의 올해 목표는?

농성이 오래되고 있는 만큼 피해자들의 고통의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황상기 아버님이 거리에서 싸운지도 10년이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농성장으로 오시는데 지방에서 여기까지 운전해서 오시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이제는 건강도 신경 쓰실 때가 됐다.(인터뷰 당일 황상기 씨는 반올림 농성장을 찾아 반올림 활동가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이렇게 문제가 오래 동안 해결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장본인인 삼성은 물론 정부 역시 그 원인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 오늘이라도 의지만 보인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아프고 죽어간 이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 그리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당연하고 상식적인 요구가 더 이상 시간을 끌기로 미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 안에는, 아니 그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새 정부가 직업병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

조나리 기자  bitjo@biznet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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