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램 가격, 반도체 호황과 수요에 따른 당연한 결과?

비트코인 채굴에 따른 공급 부족···국내 유통 업체의 담합 의혹까지 김수찬 기자l승인2017.12.15l수정2017.12.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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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넷타임스=김수찬 기자] PC와 휴대폰의 주기억장치 역할을 하는 시스템 메모리 ‘램’(RAM·Random Access Memory)은 PC와 휴대폰을 구성하는 필수 부품 중 하나다. 최근 1년 동안 램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85.1%나 상승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가장 보편적인 제품 중 하나인 PC용 8기가바이트(GB) RAM 제품의 평균가격은 8~9만원 선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해 두 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지난 10월에는 삼성전자의 ‘DDR4 8GB PC-4 19200’ 램 제품이 14만원까지 치솟는 등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통상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떨어지는 메모리 가격이 오히려 큰 폭으로 오르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램 가격의 상승 원인은 시장의 90%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삼성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공급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국내 가격이 해외직구 가격보다 싸다는 이유로 국내 유통업체들의 담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는 공급···비트코인과 배틀그라운드가 원인?

15일 현재 국내 가전제품 정보 비교사이트인 ‘다나와’에 따르면 현재 DDR4 8GB 램 제품의 평균 가격은 11만원에 이른다. 지난달에는 12만원까지 올랐으며 10월에는 14만원까지 치솟았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주력 제품인 PC용 ‘DDR4 4GB 512Mx8 2133㎒’의 평균 계약가격(고정거래가격)은 지난달 31일 기준 3.25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약 한 달 전 가격(3.09달러)보다 5.2% 상승했고, 지난해 말 가격(1.94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67.5%나 올랐다. 신제품이 고가에 거래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출시된 지 1년이 훌쩍 넘은 IT제품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점점 오르는 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램 가격이 폭등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공급량이 적기 때문이다.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는 현상이다. 세계 D램 시장의 공급을 90% 이상 차지하는 대표적인 회사들(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D램 공급량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었지만, PC용 D램을 원하는 공급처는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다.

공급처가 PC용 램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가상화폐 광풍 때문이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일종의 암호문을 푸는 방식으로 ‘채굴’하는데, 채굴기는 이런 문제를 효율적으로 풀도록 설계된 컴퓨터다. 채굴기 컴퓨터에는 고사양 그래픽카드와 램이 필수 부품이다.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램의 판매량이 증가한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1만7천달러선까지 폭등한 가운데, 이 같은 급등세가 D램 현물 가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 현물시장에서 중국의 수요는 현물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최근 중국의 PC, 스마트폰 수요가 크게 둔화했는데도, D램 판매량이 오르고 있다”며 “이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채굴기에 쓰이는 D램 판매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송 연구원은 “채굴기 제품의 D램으로는 주로 4기가바이트(GB)가 쓰이는데, PC 수요가 줄었는데도 D램 현물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것은 채굴기용 D램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상화폐 채굴기용 D램 수요가 늘어난 것은, 가상화폐 가격이 최근 급등한 것과 관련이 깊다”며 “앞으로 D램 현물가격은 가상화폐 가격에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가상화폐 가격이 앞으로도 상승한다면 채굴기 생산이 늘어 램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가상화폐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한다면 채굴기 생산이 줄고, 이미 판매한 채굴기용 D램이 시장에 중고로 다시 출하될 수 있으므로, D램 가격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 사진=다나와

램 판매량 상승에는 게임 ‘배틀그라운드’도 한 몫했다. 배틀그라운드가 전 세계적으로 1천300만장 이상 판매, 동시접속자(DAU) 152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배틀그라운드가 블리자드의 오버워치(Overwatch),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LOL) 등 경쟁 게임에 비해 요구 사양이 높다는 것도 PC용 부품 시장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는 일부 유저들 사이에서 ‘D램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로 높은 메모리 사양을 요구하는 게임이다. 통상 4GB 정도로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한 기존 게임과 달리 배틀그라운드는 이보다 2~3배 높은 램 용량을 요구한다. 최소 12GB 수준의 램 용량을 확보해야 배틀그라운드 그래픽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현재 정식 출시가 아닌 ‘얼리 억세스’ 버전으로 운용되는 배틀그라운드가 연말 혹은 내년초에 정식 출시된 이후 최적화를 거쳐도 램 요구사양은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램 수요 상승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올해 분기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D램 공급부족에 배틀그라운드 효과까지 등에 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D램 공급사들은 올해 하반기 또 한 번 사상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두 회사는 앞서 지난 2분기에도 사상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은 매출 61조8천159억원, 영업이익 14조3천31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분기 대비 1.3%와 1.9% 상승한 수치다. SK하이닉스 역시 3분기에 7조9천386억원, 영업이익 3조8천258억원으로 신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이처럼 수요가 많은데 반해 3대 회사가 공급량을 늘리지 않는 이유로는 PC시장보다 모바일 시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3대 회사 모두 D램보다는 3D 낸드플래시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세 기업이 새로 투자한 공장들이 모두 낸드 생산라인이라는 점은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D램익스체인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주요 D램 공급자들이 내년에 대규모로 설비투자를 늘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며 “따라서 생산능력의 증대나 기술의 업그레이드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산상가에서도 램 품귀현상···주문취소 현상에 소비자들 분통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램 가격에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PC업체들의 주문 취소 요청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램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변경되자 판매처들은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하기를 꺼리고 있다. 일부 매장에서 시시각각 오르는 램의 가격 인상을 이유로 제품 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신청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

이에 ‘다나와’, ‘컴퓨터본체갤러리’ 등 인터넷 게시판 사용 유저들은 “해외 직구 가격이 국내 판매가격보다 저렴하다”면서 “국내 업체들의 담합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아마존, 이베이, 뉴에그, 일본 라쿠텐 등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는 램을 국내 판매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해외 직구 사이트는 커세어 DDR4 16GB 램 기준 17~19만원 선이며, 국내 판매가는 23만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램의 판매가격이 해외직구 가격보다 비싼 것은 말이 안된다”며 “총판과 판매처의 담합, 유통구조의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국내 최대의 전자제품 판매처인 용산상가 상인들은 “국내 업체의 담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램 공급 부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격이 상승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부품 매장이 8GB 램 제품 재고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긴 추석 연휴 이후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업계에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공급부족 현상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한국시장이 유독 많이 상승했던 점은 공급부족으로 인한 ‘가격거품’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연초 대비 D램 값이 폭등한 가운데 시장에서 아예 D램을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미 수주한 공공 조달 시장에 PC를 납품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램 가격의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실적발표와 함께 D램 생산능력 확대를 선언한 이후 주요 시장조사업체들과 증권사들이 내년 D램 시장 전망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의 D램 증설과 함께 공급량이 늘어 천정부지로 치솟던 D램 가격이 진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인 소비자의 구매 수요 감소와는 별개로 B2B의 대량 구매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어 가격 인상 가능성이 계속 남아 있다고 본다. 또한 새 공장의 가동까지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급증하는 D램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D램 수요 폭증으로 지목됐던 사물인터넷 활성화와 함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IT 업체들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계속 진행되면서 D램 수요가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수찬 기자  capksc3@biznet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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