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피하지 못한 미국의 ‘관세 폭탄’

트럼프,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 부과···철강업계 수출 타격 우려 이재영 기자l승인2018.03.09l수정2018.03.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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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3월 8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철강·알루미늄 산업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미 백악관

[비즈넷타임스=이재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규제조치 명령에 서명하면서 ‘무역전쟁'의 신호탄을 쐈다. 자국 안팎의 거센 반대에도 자국 보호무역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우리 정부와 업계의 면제 노력이 일단 불발함에 따라 한국산 철강의 대미 수출이 타격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철강업계는 수출 타격을 우려하면서, 앞으로 미국과 진행될 정부 협상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의 관세부과를 강행했다. 수입 철강에는 25%, 알루미늄에는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토록 했으며, 캐나다와 멕시코산만 관세 조치 대상국에서 제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철강 업계 노동자와 노조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 이러한 내용의 철강·알루미늄 규제조치 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규제 조치의 효력은 서명일로부터 15일 후 발효한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안보 침해라는 잣대를 이용해 대통령 직권으로 특정 수입품에 무역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해를 고려해 특정 국가를 면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항을 근거로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각각 매기도록 했다.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 대상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면제 혜택을 부여했다. 그는 서명식에 앞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나프타 재협상을 거론하며 "만약 우리가 합의에 도달한다면 두 나라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철강 관세를 지렛대로 나프타 재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의도다. 협상 초반에 위협적 언사나 강도 높은 선제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한 뒤 후속 협상에서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협상술이 반영된 대목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무역전쟁을 하는 게 좋고 이기기 쉽다"며 사실상 선전 포고까지 해놓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명식에서도 "미국 산업이 외국의 공격적인 무역관행에 의해 파괴됐다", "우리나라에 대한 공격", "우리를 나쁘게 대우한 많은 나라가 우리의 동맹" 등의 발언을 통해 다시 한번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드러냈다.

EU·중국, 보복 관세 검토하며 전의 불태워···미국 시장도 흔들 

이에 대해 주요 대상국가들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결국 '세계 무역대전'의 개전이 불가피해졌다는 입장이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명령에 서명하면서 무역전쟁에 대한 공포를 키웠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함께 '3대 경제권'을 이루는 유럽연합(EU)과 중국 역시 이미 보복 조치를 경고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주요 교역국 간 계속된 확전을 통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EU는 미국을 상징하는 주요 품목들에 보복관세를 검토하면서 전의를 다지고 있고, 중국도 피해를 본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의 대미 대응을 주도하겠다는 각오를 보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강수는 교역 상대국들은 물론 나라 안까지 뒤흔들어 놓고 있다. 관세 대상국가의 반발은 당연하지만,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자신에게도 정치적으로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관세 폭탄'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온 여당 의원들과도 마찰을 빚는 등 적잖은 우군을 잃었다는 평가다.

특히 측근이자 경제사령탑인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보좌관이 이 과정에서 결국 사임했고 공화당의 의회 일인자로 든든한 원군 역할을 해온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도 의견 대립을 보였다. 무려 100명이 넘는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관세 부과계획의 '재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도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예상이 많아지고 있다. CNN도 이날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새로운 관세를 물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시장에 두려움을 주고 자신의 경제수장을 그만두게 했으며,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을 당혹하게 했고 주류 공화당 의원들과의 균열을 키웠다"고 보도했다.

특히 관세 폭탄이 실물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입법 성과로 여겨진 법인세 감세효과도 반감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미국 최대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과 엑손모빌의 데런 우즈 최고경영자 등도 이날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등 재계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주변에서 쏟아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우려에도 끝까지 '마이 웨이'를 고집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등을 겨냥한 국내용 행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법률적 문제로 서명을 다음 주로 미룰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날 오전 트위터로 직접 관세명령 서명 계획을 알렸다.

▲ 사진=뉴시스

철강업계, 수출 타격 우려하며 추가 협상 희소식만 기다려

한국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윌버 로스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오린 해치 상원 재무위원장 등 행정부와 의회 인사를 대상으로 한국을 규제조치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업계는 수출 타격을 우려하면서 앞으로 미국과 진행될 정부 협상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철강업계 관계자는 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큰 걱정"이라며 "관세가 발효하면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수익성과 수출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이미 여러 제품이 높은 관세로 수출길이 막힌 상태에서 25%를 더하면 당연히 부담될 수밖에 없다"며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할지 여러 전략을 검토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밝혔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철강재의 88%에 이미 반덤핑·상계 관세를 부과한 상태인데 이번에 발표한 관세는 여기에 추가로 적용된다. 관세가 누적되면서 2017년 대미 철강 수출은 354만3천t으로 고점인 2014년 대비 약 38% 감소했다.

포스코의 경우 현재 냉간압연강판 66.04%, 열연강판 62.57%의 관세를 내고 있어 25%를 더하면 관세가 각각 91.04%, 87.57%에 달한다. 현대제철도 냉간압연강판에 38.22%의 관세가 부과된 상태라 총 63.22%의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 유정용 강관(OCTG)에 최대 46.37%(넥스틸)의 관세를 부과했는데 여기에 25%가 추가되면 약 70%의 관세를 내야 한다. 넥스틸, 휴스틸, 세아제강 등 강관을 주로 수출하는 업체들은 특히 미국 시장 의존도가 커 피해가 집중될 전망이다.

철강업계에서는 앞으로 정부가 미국과 진행할 협상에 기대를 걸고 있다. 관세는 15일 후 효력이 발생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기간에 관세 적용 제외를 원하는 국가들과 협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만약 협상을 통해 경쟁국들이 관세를 피해 가는 가운데 한국은 제외되지 않을 경우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철강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대응책 마련을 위한 민관합동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일 미국이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앞으로 진행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이달 중으로 한미FTA 3차 개정협상을 진행할 전망이다.

이재영 기자  news@biznet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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