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보다 못한 퇴직연금, 노후 맡길 수 있나

퇴직연금 수익률 1%대···수익률 낮고 집값 오르니 세금 손해 감수하고 중도 인출 최효진 기자l승인2018.04.11l수정2018.04.13 09:5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사진=뉴시스

[비즈넷타임스=최효진 기자] #직장인 A씨(42)는 지난 연말정산에서 퇴직연금 수익률을 보고 중도 인출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1%대에 불과해 은행 예·적금 상품의 이자보다 낮아서다. 주변에선 퇴직연금을 미리 인출해 집을 사는 데 보탰다는 이야기도 이미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그는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을 하는게 아깝긴 했지만 대출받아 이자를 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며 “수익률이 예금이나 적금보다 낮은데 돈을 묵혀놓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수익률 낮은 이유는? 원리금 보장상품 비중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 

대표적인 노후준비 금융상품인 퇴직연금이 흔들리고 있다.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생활을 위한 안전판이다.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기대한다면 국민연금뿐 아니라 퇴직연금까지는 필수로 갖춰야 한다. 정부가 2005년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것도 소중한 노후 재원을 잘 지키자는 취지였다. 기존 퇴직금 제도에선 중간 정산으로 노후 생활자금이 소진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은행의 예금이나 적금보다 낮다. 이에 많은 근로자들은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하고 부동산에 눈을 돌리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수익률은 전체 1.88%, 확정급여형(DB) 1.59%, 확정기여형(DC)·기업형IRP 2.54%, 개인형IRP 2.21%를 기록했다. 특히 퇴직연금 중 적립 규모가 가장 큰 DB(확정급여형)의 연간수익률은 1.59%로 16년 수익률 1.68%보다 0.09%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말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1.65%인 것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이 아닌 일반예금에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이유로 원리금 보장상품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을 문제로 꼽는다. 지난해 퇴직연금 중에서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된 규모는 전체 적립금의 88.1%인 148조3000억원에 달한다. 예·적금이 68조5000억원(46.2%)으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보험 상품 64조4000억원(43.4%), ELB 13조2000억원(8.9%), 국공채 등 기타 상품 2조2000억원(1.5%) 순으로 드러났다.

반면 실적배당형상품 운용 규모는 14조2000억원으로 전체 적립금의 8.4%에 그쳤다. 실적배당형상품의 97.4%인 13조8000억원이 펀드에 투자됐는데 이 중 채권혼합형과 채권형 투자액이 9조4000억원(68.2%)에 달해 실적배당형상품 내에서도 보수적인 운용 행태가 두드러졌다.

수익률을 보면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크게 떨어졌다. 원리금보장형상품 수익률은 은행 정기예금 금리(1.65%)보다 낮은 1.49%를, 실적배당형상품 수익률은 6.58%를 기록했다. 증권회사 관계자는 "주식시장 호황에도 원리금보장형 중심의 보수적 운용관행과 저금리 기조 지속으로 낮은 수익률을 시현했다"며 "퇴직금은 절대 원금을 잃어선 안 된다는 불안함이 자리해 원금보장형으로 굴리는 게 오히려 수익률에 독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가입자의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의외로 연금 운용을 회사에 맡겨두고 방치하는 가입자가 많다. DC형이라면 원금보장형 뿐 아니라 실적배당형 상품에 관심을 돌려보는 게 바람직하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의 수수료가 높거나 해당 금융상품의 수익률이 낮다면 상품을 갈아타는 과감함도 필요하다.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의 50%를 운용하는 은행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1.6%로 금융투자사(2.54%)는 생명보험사(1.99%), 손해보험사(1.79%)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가입자에게 최선의 투자 의사 결정안을 제시하는 금융회사의 상품에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할 때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가입자 5명 중 3명 이상이 주거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연금을 중도인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도인출한 가입자의 주택 구입이 45.7%, 전세금 및 임차보증금 충당이 18.1%로 집계됐다. 장기요양 비용을 위한 퇴직연금 중도 인출도 25.7%나 됐다.

퇴직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일시금으로 받을 때보다 세금이 30% 감면된다. 중도인출 시 일시금으로 연금을 받으면 세금을 고스란히 물어야 하는 셈이다. 퇴직금은 규모, 근속기간에 따라 0~28.6% 세율을 적용되는 퇴직소득세를 내야 한다. 다만 직장을 그만둔 후 퇴직금을 IRP(개인형 퇴직연금) 계좌에 옮길 경우 퇴직소득세를 30% 가까이 줄일 수 있다. IRP 계좌로 이체해 연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율의 70% 수준인 연금소득세로 내면 된다.

은행 관계자는 "퇴직금을 한번에 사용할 계획이 아니라면 IRP계좌에 이체해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받아야 소득세를 줄일 수 있다"며 "퇴직연금은 노후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중도인출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뉴시스

수익률 쥐꼬리에 신뢰 하락···주택구입해 노후 대비하는 것이 이익

기존 퇴직금 제도에선 중간 정산으로 노후 생활자금이 소진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퇴직연금 적립금을 중도에 빼서 쓴 가입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중도인출자는 4만91명에 달한다. 인출된 금액은 총 1조2000억원, 1인당 평균 3073만원이다. 전년보다 중도 인출한 가입자와 금액 모두 대폭 늘었다.

이들은 왜 퇴직연금을 깼을까. 가장 많은 사유는 주택 구입(45.7%)이었다. 이어 본인·배우자·부양가족의 6개월 이상 요양(25.7%), 주거 목적의 전세금·임차보증금 충당(18.1%), 개인회생절차 개시(10.1%) 순이었다. 중도 인출은 가입자에겐 손해다. 사망·해외이주·개인회생 같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연금소득세보다 높은 퇴직소득세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연금소득세는 퇴직소득세의 70% 수준이다. 그런데도 중도 인출이 많은 것은 퇴직연금을 노후 안전판이 아닌 맡겨둔 여윳돈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퇴직연금에 대한 신뢰 부족이다. 퇴직연금에 꼬박꼬박 적립해 봤자 수익률이 쥐꼬리다 보니 쉽게 중간에 빼서 쓰게 된다. ‘퇴직연금 투자수익률 < 주택가격 상승률’이라면 퇴직연금을 헐어서 집을 사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경희 상명대 글로벌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논문에서 “퇴직연금의 투자수익률이 낮을수록, 특히 주택가격 상승률이 투자수익률보다 높을수록 중도 인출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무분별한 중도 인출을 줄이기 위해 “중도 인출 사유에서 주택 구입을 빼고 영구장애, 과도한 의료비 같은 ‘예측 불가능한 경제적 곤란 상황’으로 엄격히 한정할 것”을 주장했다.

실제 미국·영국·호주는 퇴직연금을 중간에 헐 수 있는 사유를 까다롭게 제한한다. 미국은 사망·영구장애로 근로활동을 못하거나 의료비 같은 긴급자금이 필요할 때만 중도 인출을 해 준다. 호주 역시 장애 또는 심각한 재무적 곤경에 한해 중간에 돈을 뺄 수 있다. 영국은 건강을 이유로 한 퇴직이나 기대여명이 1년 이하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그 외 사유에 대해서는 55%를 세금으로 뗀다.

그러나 반발과 형평성 시비가 커질수 있어 급격한 규제보다는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중도 인출 규정을 까다롭게 바꿔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급한 돈이 필요할 때 퇴직연금을 빼 쓰는 대신, 퇴직연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도록 유도해 나가야 한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택 구입을 위한 인출 시 적립금 전액이 아니라 일정 비율, 예를 들어 30% 또는 3000만원으로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현재 거의 활용되지 않는 퇴직연금 담보대출도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뉴시스

금융기업도 퇴직연금 운용 관심 없어

퇴직연금 운용에서 수익률은 기업 담당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한 중소기업의 인사·재무 담당 B씨는 “(퇴직연금 도입을) 하라고 해서 도입했을 뿐”이라며 “수익률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평균 연 1.88%에 그쳤다. 기업이 퇴직연금 사업자(금융회사)를 선정하는 기준도 수익률과는 거리가 멀었다. B씨는 “대출 이자율을 우대해 준다고 해서 주거래은행 1곳과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근로자의 노후 자산을 얼마나 잘 불려 주느냐가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 얼마나 유리한지를 잣대로 금융회사를 결정한 셈이다.

연금 가입자인 종업원이 퇴직연금 운용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근로자는 퇴직연금의 중요성에는 동의한다. 한국노총의 지난해 퇴직연금 조사에 따르면 응답 근로자의 93.4%가 퇴직연금은 노후의 중요한 소득자원이라도 답했다. 그런데도 직업을 떠난 뒤에야 받을 돈이라서 그런지 퇴직연금 운용에 관심이 없다. 기업과 종업원이 관심을 두지 않으니 퇴직연금 담당자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중소기업의 관리팀장인 C씨는 “순환보직이라 퇴직연금 업무 담당자가 계속 바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코스피가 21.76% 상승한 지난해에도 퇴직연금 수익률(1.88%)은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1.65%)을 살짝 웃도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협약 임금인상률 3.6%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5년(2013~2017년) 수익률은 평균 2.39%로 2013년에 5년 만기 정기예금(평균 금리 3.2%)에 든 것만도 못하다. 금리가 낮은 1년 만기 정기예금으로 주로 운용되는 데다 수익률과 상관없이 0.4~0.5%의 수수료를 떼기 때문이다.

원금보장형에 편중된 운용의 틀을 깨려면 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승용 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퇴직연금 운용을 담당하는 별도 법인을 두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면 노사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적극적으로 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효진 기자  news@biznettimes.co.kr
<저작권자 © 비즈넷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효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시 서초구 서운로 19, 1107호 비즈넷타임스  |  전화 : (02)3472-1507  |  팩스 : (02)3472-1509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 03482  |  발행인 편집인 : 백승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수찬
비즈넷타임스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18 비즈넷타임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