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내리는 심판 '환율보고서'···아시아가 떨고 있다

4·10월마다 각국 ‘환율 주권’ 논란···환율조작국 지정 시 수출 악화·원화 가치 하락 남선태 기자l승인2018.04.12l수정2018.04.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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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넷타임스=남선태 기자] 한국처럼 수출이 많은 국가의 외환당국은 해마다 4월과 10월이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미국 재무부가 발간해 의회에 제출하는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Currency Manipulator)'으로 지목될까 두려워서다. 환율조작국 지정 시 수출 악화·원화 가치 하락 등 악재가 올 수 있다. 미국은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강도로 한국 외환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매달 구체적으로 공개할 것을 요구해왔다. 달러 매입과 매도로 나눠 각각 금액과 시점까지도 모두 공개하라는 것이다.

미국이 매년 두 번 내리는 심판…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은?

미국 재무부는 1년에 두 번(4월, 10월) 환율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각국의 대미(對美) 교역수지와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비율, GDP·단기부채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 등이 일반적인 분석 대상이다. 지난해부터 새 교역촉진법이 발표되며 심층 분석 대상국을 지정하는 절차가 추가됐는데, 이 심층 분석 대상국이 바로 ‘환율조작국’이다. 미국 재무부는 심층 분석 대상국으로 지정된 국가에 대해 정부 개입을 포함한 외환시장 동향, 실질실효환율 추이 및 저평가 정도, 자본유출입 및 무역 관련 규제 동향, 외환보유액 추이 등을 추가로 분석한다.

또 양자협의를 통해 미국의 우려를 전달하고, 환율 저평가와 무역흑자 시정을 위한 정책을 촉구하게 된다. 이후 1년 동안 해당국과 협의를 거쳐 개선되지 않으면 제재를 한다. 최악의 경우 미국 정부조달시장 참여가 금지되기도 한다. 환율보고서에 따르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GDP의 2% 이상(지속적 일방향 시장 개입) 등 세 가지가 모두 해당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

심층분석대상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 지원이 중단되고, 심층분석대상국 기업은 미국 조달시장 입찰이 금지된다. 또 미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해당 국가에 대한 감시 강화를 요청할 수 있다. 세 가지 가운데 2개 요건에 해당하면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이 돼 집중 감시를 받는다. 아직까지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없다.

하지만 한국은 교역촉진법이 적용된 2016년 4월 이후 네 차례 보고서에서 대미 무역 흑자 1~3위인 중국, 독일, 일본과 함께 항상 관찰대상국에 올랐다. 미국이 환율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무역전쟁에서 그런 것처럼 한국이 미·중 싸움에 엮여 들어갈 수 있는 셈이다.

미국과 환율 논쟁을 계속할 경우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한 일본처럼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플라자합의 때도 미국이 과도한 무역적자를 문제 삼아 환율을 건드린 만큼 한국은 적정선에서 타협해 미국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일본은행(BOJ)이 미국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를 절상하기로 합의하며 엔화 가치는 3년 새 2배가량 뛰었고, 이는 일본의 수출 경쟁력 약화를 불러와 잃어버린 20년의 계기가 됐다.

특히 미국 재무부가 '엿장수 마음대로' 세부 규정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실제 중국은 2017년 4월 환율보고서 발간 당시 현저한 대미 무역 흑자 기준 1개에만 해당됐지만 당시 환율보고서에서 '이번 보고서부터는 대미 흑자 규모와 비중이 과다한 국가의 경우 1개 요건만 충족해도 포함된다'고 요건이 바뀌는 바람에 계속 관찰대상국에 머물게 됐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 집계 대미 무역 흑자는 180억달러였으나 미국 상무부 집계로는 229억달러에 달해 이번에도 현저한 대미 무역 흑자, 상당한 경상 흑자(785억달러·GDP 5% 추정) 규정에 걸려 관찰대상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뉴시스

한국 지정 가능성은? “가능성 낮지만 안심 못해”···정부 “환율주권 우리 손에”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 기준으로 한국의 대미무역수지 흑자는 302억달러로 200억달러를 초과하고, 경상수지 흑자도 7.9%에 달해 GDP대비 3% 초과 조건 등 2가지를 충족해 관찰대상국에 지정됐다. 그러나 ‘지속적 일방향 시장 개입’ 요건은 간신히 피해가면서 환율조작국에는 지정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시장 개입’ 요건 때문에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확률은 극히 낮다고 평가했다. 올해 4월 환율보고서는 15일을 전후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무역흑자와 경상흑자 등 두 조건에 해당되지만 정부의 개입 부분에선 오히려 원화가치를 높이는 쪽의 미세개입을 했다”며 “우리 정부가 앞으로도 원화 약세를 유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에 현재 미국이 제시한 조건으로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태”라고 말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환율조작국 지정이 실질적인 제재수단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라는 점에서 한국만을 단독으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여지는 사실상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미국이 갑자기 지정 요건을 바꾸거나 1988년 도입한 종합무역법을 들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 종합무역법은 무역촉진법처럼 구체적인 요건이 명시돼 있지 않아 대미 무역 흑자국이나 경상수지 흑자국이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경우 한국도 덩달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본부 국제금융팀장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중국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한국, 대만 등을 환율조작국으로 우선 지정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과 극단적 대결 상황을 피하면서도 중국을 압박하기 위하거나, 미국 우선 정책 추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를 우선적으로 지정할 수 있다”며 “미국의 ‘종합무역법’하에 한국은 1988년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다. 중국은 1992년에 지정되면서 한국보다 4년 늦게 지정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환율조작국 요건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재무장관과의 통화에서 “한국은 환율조작국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김 부총리는 12일 오전 8시부터 15분간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했다. 3월 1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양자면담에서 주요 이슈에 대해 언제든 수시로 전화통화 등을 통해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의해 나가기로 한데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통화에서 “우리 외환정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되 급격한 쏠림 등 급변동시 시장안정조치 실시라는 원칙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사례를 사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미국이 이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시킬 움직임을 보이면서 환율주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는 점을 감안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김 부총리는 또 흑자폭이 크게 축소된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 동향 등을 설명하고 “한국은 미국 환율보고서상 환율조작국이나 심층분석대상국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점들이 환율보고서에 잘 반영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선태 기자  news@biznet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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