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정책의 폐해

한전 2분기 연속 1천억대 적자···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에 에너지 절감 부담까지 커진 발전사 최효진 기자l승인2018.05.15l수정2018.05.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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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현장. 사진=뉴시스

[비즈넷타임스=최효진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2분기 연속 적자를 보며 에너지 기업들의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국제 유가 급등 등 부정적인 외부 환경 변화도 작용했지만 주요 배경에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있다. 탈(脫)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한전은 값싼 원자력 전기 대신 비싼 신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 전기를 구매해야 했다. 이어 에너지 절감 의무 부담까지 떠안으면서 이중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원가 부담이 누적되면 결국 전기요금 등 에너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지고, 그 부담은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전, 1분기 1276억 영업손실 기록···지난해 4분기부터 18분기만의 적자

한국전력공사가 원전 가동률이 급감한 가운데 연료비와 전력구입비가 늘어나며 올 1분기에도 실적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분기 연속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했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 연결기준 1276억13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14일 공시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적자전환해 2504억67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증가한 15조7060억4400만원을 기록했다.

실적 부진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기조에 따른 원전 가동률 급감 영향이 크다. 한전의 원전 가동률은 지난해 74.2%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70%에서 지난해 4분기 65%로 5%포인트 낮아졌으며 올 1분기 원전 가동률은 60%를 밑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전 가동률이 낮아지면 석탄과 LNG(액화천연가스)발전 가동률이 상승하고 전력구입비가 증가하면서 한전의 원가 부담은 높아진다. 신민석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전의 1분기 연료비와 전력구입비가 각각 20.1%, 14.6% 증가하면서 원가가 급증했다"고 했다. 통상 원전 가동률이 1% 떨어지면 한전의 연간 영업이익은 약 2000억원 감소한다고 한다.

원전 가동률이 1분기를 바닥으로 점차 회복되고 원전 발전이 대부분 상반기부터 정상 가동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미세먼지 대책에 따라 3월부터 6월까지 5개의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 국제 석탄 가격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상반기까지는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4월부터 적용된 석탄 개별소비세가 kg당 30원에서 40원으로 올라 비용이 올라간 것도 한전에 부정적이다.

하반기는 발전믹스(발전원별 비율·energy mix), 원전 가동률이 개선되면서 상반기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전망이다.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원민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는 미세먼지 대책에 따라 가동 중단된 노후 석탄발전소 5기가 재가동되고 9월과 12월에 신규 원전 2기가 가동 개시될 것"이라며 "여기에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과 경기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

영업적자를 벗어나기까지는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많다. 류제현 미래에셋대우증권 연구원은 "2분기 들어서도 원전 가동률은 60% 이하에서 머물 것으로 추정되며 하반기 신규원전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호기가 바로 가동될 지도 불투명하다"며 "신규원전이 가동되더라도 정부가 장려하고 있는 LNG와 재생에너지 발전 수요가 감소할 수 있어 절대 발전량은 크게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달 김종갑 사장이 취임하면서 4개월간의 사장 공백 사태를 마무리했다. 김 사장은 내부적으로는 수익성 회복을 위한 비상경영을 하면서 외부적으로는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현실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현실화는 한전 내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정부 역시 한전의 실적 악화가 에너지 전환정책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수익성 개선에 공감하는 상황이다. 김 사장은 취임사에서도 "무엇보다도 수익성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뉴시스

에너지공급자 효율향상 의무화제도, 탄소배출권거래제 이은 이중규제?

이런 한전이 정부 정책으로 연간 200억원 이상 추가 부담을 또 떠안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6월부터 한전을 대상으로 에너지공급자 효율향상 의무화제도(EERS) 시범사업을 도입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EERS는 에너지공급 사업자에 에너지 수요를 감축할 수 있는 투자를 강제하는 제도다. 한전이 기업 등에 고효율 전동기를 보급해 전력 수요를 줄이는 식이다. 전력 수요가 줄면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신재생에너지의 단점이 상쇄된다. 에너지 전환 정책에도 탄력이 붙는다.

하지만 한전으로선 부담이다. 이번 시범사업 시행으로 올해 말까지 2016년 전력 판매량의 0.15%를 절감할 수 있는 투자를 해야 한다. 얼마를 투입해야 하는지조차 불확실하다. 한전 관계자는 “시범사업인 만큼 해봐야 비용과 편익을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해도 순이익이 200억원 넘게 감소할 수 있다. 전기 판매 이익이 줄어서다. 정부는 내년께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을 개정해 가스공사 등 다른 에너지 기업에도 EERS를 의무화하고 감축 목표도 해마다 올릴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또다시 한전을 에너지 전환 정책의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이미 탄소배출권거래제(ETS)에 참여하고 있는 한전에 EERS를 도입하는 건 이중규제라는 분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주도한다는 유럽연합(EU)조차 전력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해 ETS와 EERS 중 하나만 도입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공급자 효율 향상 의무화제도(EERS)'를 올해부터 시범 실시한다고 14일 밝혔다. EERS는 한전 등 발전 6개사,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급자에 에너지 판매량의 일정 비율을 매년 절감 목표로 부여하고, 에너지효율 향상을 위한 다양한 투자를 유도해 목표를 달성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한전은 이번 EERS 시범사업 실시에 따라 2016년 전력 판매량의 0.15%(746GWh), 내년에는 0.2%를 각각 줄여야 한다. 746GWh는 100MW급 석탄화력발전소 1기에 해당하는 전력량이다. 정부는 2020년부터는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한전은 당장 고효율 인버터(직류 교류 전환기) 등 고효율 전력기기를 민간에 보급 지원하는 사업을 수행하거나,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의 투자대행 등으로 전력을 절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당 연간 2MWh의 에너지 절감 효과가 있는 인버터를 90대 보급할 경우, 180MWh만큼 해당연도 절감 실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업계에 따르면 고효율 인버터 가격은 용도에 따라 대당 수십 만원에서 수천 만원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이미 원가 압박을 받고 있는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들이 추가 부담을 떠안으면서 재무적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한전 등 발전 자회사들은 정부의 RPS제도에 따라 매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할당받고 이를 맞추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안'에 따라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구축에 51조원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 같은 에너지 절감 사업 부담까지 떠안으면 원가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발전 원가가 가장 낮은 원자력발전소 비율도 계속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구조가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한전은 2008년 이후 고강도의 자구노력으로 이미 조직을 줄여온 만큼 추가로 원가를 줄일 여력이 높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전의 재정 압박은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탈원전 에너지정책에 피해를 입은 업체와 사업자들에게 보상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중이다.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정책에 따라 피해를 입은 건설업체 및 관련 사업자들에게 보상해주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추진된다. 지난 9일 국회 의원입법시스템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이철우 의원(자유한국당, 경북 김천시)은 최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단 등에 따른 피해조사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먼저 법안은 피해보상을 위해 ‘피해자’에 대한 정의를 규정했다. 발전용원자로 및 관계시설의 건설허가·운영허가 취소를 받은 원자력사업자와 관련사업자, 물품·용역을 공급하거나 공사를 도급받아 수행한 건설업자 등을 피해자로 명시했다.

최효진 기자  news@biznet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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